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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4

할머니의 나무십자가 내 침대 머리맡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꽤 큼직한 십자가가 놓여있다. 어릴 때 나를 키워주신 우리 외할머니의 십자가. 투박하지만 손때 묻은 할머니의 유산. 성인 여성의 상체만 한 꽤 큼지막한 십자가는 30-40년 동안 할머니 집의 벽에 걸려 한 동안은 어머니의 걱정 어린 자식들의 기도를 한 동안은 손주들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는 할머니의 기도를 차곡차곡 쌓았을 것이라... 독실한 신자였던 할머니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걱정과 위로와 희망과 소원을 십자가에 담았으리라...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3개월 남짓. 어릴 때 나를 키워주셔서 다른 손주들보다 나를 많이 아끼시던 할머니가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십자가. 나는 독실한 신자도 아니고, 성당이나 교회를 주기적으로 나가는 사람도 아니지만, 할머니의 희로애락과 인생의.. 2020. 8. 28.
사랑이란 감정 사랑이란 무엇일까..? 철학적인 혹은 종교적인 개념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상에서 스쳐가는 수많은 감정 중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의 특별한 평범성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어 졌다. 나는 아주 오랜 기간 연애 중이다. 한 사람과 대학교 1학년 때 만나 햇수로 8년간 연애를 지속하고 있다. 보통 '8년째 연애 중'이라고 말하면 다음의 반응을 보인다. 1. 와 진짜 오래 만났네. 부러워요. 저도 오랫동안 한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요. 2. 결혼하겠네요? 3. 중간에 헤어진 적 없이 8년간 만났어요? 4. 어떻게 한 사람을 그렇게 오래 만나? 다양한 반응이 엇갈리는 가운데,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나의 일상 속에 존재한다' 8년이란 세월이 무색할 만큼 내 기억 속 그는 담백하다. 유난하지.. 2020. 8. 19.
진짜 삶을 그린 영화 행복을 찾아서, 조이(Joy) 최근 시청하고 감명받은 영화들이다. 어떤 공통점이 보이는가? 실제 인물들의 진. 짜. 삶을 그린 영화 행복을 찾아서와 조이의 주인공은 둘 다 고졸이었고, 가난에 시달렸고, 가족 간의 불화가 있었고, 책임져야 할 아이가 있었다. 두 영화는 평범함조차 사치로 여겨지던 사람들의 영화 같은 진짜 성공 스토리이다. 앞에서 언급한 두 영화를 시청하다 보면 '이쯤에서 행운이 따르겠구나, 이쯤 되면 일이 풀리겠구나'하는 cliché가 통하지 않는다. 마치 내 예상을 조롱이라도 하듯, 주인공은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한다. cliché 는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작품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들의 이야기는 실제의 삶이었을 테니까. 인생은 스크린 속 이야기처럼 불행과 행복을 1:1의 엇비슷한 비율.. 2020. 4. 28.
'나이'라는 상대적 개념 "생각해보니 엄마는 내 나이 때 나를 낳았네..? 와.. 어떻게 보험일을 시작했어? 대단하다.." 50대 중반의 엄마는 20대 후반인 나보다도 활기찬 사람이다. 아침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고, 밥을 차려내고, 골프 연습을 가고, 사람들과의 약속을 다니는, 체력 하나만은 끝내주는 사람이다. 우리 엄마는 참 힘들게 살았다. 으리으리한 저택에 살던 어린 시절을 지나 가세가 기울면서 엄마 인생에 고난이란 단어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대학생 때부터 동생 둘을 맡아 키우면서 주중에는 학생 조교로 주말에는 골프 캐디로 퉁퉁 부은 다리를 이끌고 동생 둘을 대학에 보냈고, 결혼한 후에는 IMF 직격탄을 맞고 주저앉은 남편 대신 집안의 가장으로 딸 둘과 시댁, 남편을 모두 케어했다. 첫째인 나를 낳고 1년이 조금 .. 2020.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