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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나이'라는 상대적 개념

by stella.bright 2020.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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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pixabay

 

"생각해보니 엄마는 내 나이 때 나를 낳았네..? 와.. 어떻게 보험일을 시작했어? 대단하다.."

 

50대 중반의 엄마는 20대 후반인 나보다도 활기찬 사람이다. 아침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고, 밥을 차려내고, 골프 연습을 가고, 사람들과의 약속을 다니는, 체력 하나만은 끝내주는 사람이다.

 

우리 엄마는 참 힘들게 살았다. 으리으리한 저택에 살던 어린 시절을 지나 가세가 기울면서 엄마 인생에 고난이란 단어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대학생 때부터 동생 둘을 맡아 키우면서 주중에는 학생 조교로 주말에는 골프 캐디로 퉁퉁 부은 다리를 이끌고 동생 둘을 대학에 보냈고, 결혼한 후에는 IMF 직격탄을 맞고 주저앉은 남편 대신 집안의 가장으로 딸 둘과 시댁, 남편을 모두 케어했다.

 

첫째인 나를 낳고 1년이 조금 넘은 어느 날, 엄마는 남편을 대신해 가장으로의 무게를 짊어졌다. 보험회사에 출근을 시작했고 보험 영업을 뛰었다. 엄마의 형제들은 혹시나 도와달라고 할까 엄마가 말을 꺼내 보기도 전에 선을 잘랐다. 그럴수록 엄마는 이를 악물고 뛰었다. 우체국, 학교, 회사 등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맨 땅에 헤딩하면서, 몇 번을 경비원에게 쫓겨나면서...

 

엄마라고 왜 자존심 상하지 않았을까, 왜 힘들지 않았을까.

 

회사 안팎에서 퀀텀 점프를 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오퍼를 받기도 여러 번. 그러나 당장 한 두 푼이 아쉬워 아까운 기회를 놓치기 일쑤였다. 마치 남들은 꿈도 꾸지 못할 기회를 잡아보려 손을 내미는 것조차 사치인 것처럼...

집에 있는 핏덩이 둘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엄마는 그렇게 높이 날아오를 기회를 여럿 마다한 채,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어느 오후, 엄마와 차를 타고 가다가 문득 내 나이가 어느새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와.. 엄마! 내 나이 때 엄마가 나를 낳았네?"  

"응..? 그렇네! 네가 29살이니까!"

 

"엄마는 언제 보험일을 시작했어?"

"너 낳고 1년 좀 넘어서였으니까 30? 31? 그때는 무서울 것 없었지. 어디든 보이면 그냥 밀고 들어갔어!"

 

"음... 나는 내가 너무 나이가 많은 것 같아서 시도하는 것조차 너무 겁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정말 도전 정신 하나는 투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말 끝을 흐렸다. 갑자기 인생이 허망해지며 눈앞이 잠시 흐려지려는 찰나, 엄마가 말했다.

 

"난 네 나이면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뭐가 나이가 많아 네가! 엄마는 너보다 많은 나이에 가진 것 없이 맨 몸으로 부딪혔다!"

 

갑자기 우리 엄마가 너무나 커 보였다. 나이들어 늙고 주름진 얼굴에, 예전보다 체력적으로도 약해진 엄마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대단해 보였다. 우리 엄마는 혼자서 가정을 꾸리면서도, 본인은 누리지 못한 것을 딸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 남부럽지 않게 자식 둘을 키워냈고, 그 바쁜 와중에도 집을 사고 재테크를 하며 재산을 불렸다.

 

 

생각해보면 29이란 나이는 어리지도 않지만 분명 많은 나이도 아니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내 나이가 너무 많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있었던 것 같다. 언제 한 번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와 내가 2년만 어렸어도 외국으로 나가는 건데..." 그러다 문득 2년 전 내가 "2년만 어렸으면 무언가를 했을 텐데.."라고 읊조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나는 더 어린 날들을 갈구하며 나의 선택에 한계를 두겠지?

 

나이는 너무나도 상대적인 개념이고, '나이'라는 사회가 만든 프레임을 깨고 나오는 건 나의 몫이다. 

 

 

더 해빙에서 '토성 리턴'을 설명하면서 이런 예시가 나온다. 석가모니는 29세에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고 왕궁을 나와 6년간의 수련 끝에 부처가 되었다. 철강왕으로 잘 알려진 앤드루 카네기가 12년 동안 다니던 철도 회사를 퇴직한 나이는 서른이다. 토머스 에디슨은 29세에 연구소를 세우고 발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도,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도 모두 28살에 좌절을 맛본다. 모든 사람이 토성 리턴 시기에 알을 깨고 나오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운이 좋은 것 같다.

 

내가 전 회사를 퇴사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했던 말이 있다.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지금 여기는 네 길이 아니라고 나를 끌고 나온 것 같아."

 

29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방황하고 있다. 다행인 건, 내 가슴이 뛰는 일에 한 발짝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미뤄왔던 것들을 시작할 수 있는 열정과 용기가 생기고 있다는 것. 무기력하게 출퇴근 지하철에 몸을 맡긴 채 회사와 집을 오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적극적인 자세로 도전하고 있다는 것. 어쩌면 애매하다고 생각했던 29살이라는 나이가, 그 '운명'이 나에게 주는 선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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