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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성장이라는 거짓말 (Fairy tale of Growth)

by stella.bright 2020.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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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Growth (성장)

 - 진보는 경제적 성장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가설

우리 모두는 높은 수준의 소비주의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사람은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경제 성장 논리를 위한 서사로 정치인들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다,

 

when it comes to climate change, we are basically discussing about energy.

Energy is the center for cliamte change because carbon emission is heavily related to fossil fuels.

There is a very strong and complex relationship between energy and economic growth as economic progress that has been made in developed world was enabled by energy created by burning fossil fuels

 

II. Green Growth (녹색 성장)

 - 경제가 환경을 더 이상 훼손하지 않고도 성장할 수 있다는 가설

 

경제 성장을 하면서 더 적게 소비하고 더 적은 양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이론에 기반함.

즉, GDP와 energy&material consumption(related to CO2 emission)이 decoupling(탈동조화) 될 수 있다는 가설.

이는 재활용이나 재사용 등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다면 가능할 수 있음. 

문제는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는 것. (In fact, GDP growth and energy consumption or CO2 emission has a very strong correlation in statistical term.)

 

한 가지 주장은 화석 연료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부분적으로는 맞다. GDP per unit 대비 50년 전에 사용하던 에너지보다 현재 사용하는 에너지가 훨씬 적다.

그러나 이 주장도 모순적이다. 전구보다 더 효울이 좋다는 LED 전구를 개발한다. 더욱 효율적이기 때문에 더 오랫동안 전구를 켜 둔다. 혹은 TV가 소비하는 에너지의 양이 25% 줄었다. 그러자 우리는 25% 더 큰 화면의 TV를 사용한다. 

즉, 실제로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효과가 미비하거나 오히려 에너지 소비량이 증가한다.

 

두 번째 주장은 화석연료 대신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경제 성장을 위해 재생 에너지를 활용한다는 것인데, 이 주장은 에너지 소비 자체를 줄이는 데에는 큰 목적을 두지 않는다. 단지 현재 화석 연료로 만들어지고 있는 에너지의 양을 재생에너지로 변환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현재로서는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진 에너지가 화석 연료로 만들어진 에너지 소비량에 merely 더해져서 소비되고 있다는 것. 또, 완벽한 전환을 위해서는 현재 수준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면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지금까지 보다도 더 많은 양의 material을 채굴해야 한다. (태양광 패널, 풍력 발전기를 만들기 위해) 이는 absurd 한 주장이다. 현재 decision-maker들이 주목하고 있는 기술 중 하나는 BECCS. 하지만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지, 타당한 주장인지 여부조차도 동의된 적이 없는 이상적인 기술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III. Degrowth (탈성장)

  - 기후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사람, 환경, 그리고 돌봄(care)을 경제 성장보다 먼저 두어야한다는 가설

 

지금까지의 토론은 우리가 가진 체제, 생산 방식, 소비 방식, 이동 방식에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안된 해법과 기술적 대안들은 충분하지 않다. 결국 우리는 에너지와 소비를 줄여야 한다. 탈성장은 공유와 연대 그리고 상호적 생동 속에서 잘 살기 위해, 우리가 향유하는 것들을 누리기 위해 그렇게 많은 물질과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탈성장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우리 사회가 성장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고, 생존하기 위해서 성장은 필수 불가결하다는 생각에 대한 비판이다. 다른 하나는 대안이다. 부유한 산업 국가들이 생산과 소비를 줄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적으로 결정되어야 하고 이는 감축 그 자체가 아니라 인류의 안녕(well-being)과 생태적 지속가능성 그리고 사회적 평등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탈성장이 그릴 사회에 대한 여러 주장이 존재하지만, 현대의 인간이 향유하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인간적 안녕(well-being)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1. Happiness (행복)

보통 우리가 원하는 물건을 소비하면 15분 정도의 행복감이 지속된다. 우리는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요트를 원하고, 이를 위해 더 나은 직장을 원한다. 그러나 결국 증가치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결국 행복 지수는 그 전으로 회귀한다. 국가 행복도는 1950년대를 고점으로 하강선을 그리고 있다. 인간의 안녕에 있어서 수입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벌기 위해 경쟁을 하고, 그 수준에 익숙해지면 또 다른 경쟁에 뛰어든다. 결국 인간의 안녕에 일시적인 행복은 기여하는 바가 적다. 그렇다고 소득이나 물질적인 성취가 행복에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우리의 행복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고 나면 혹은 어떤 수준의 수입적인 문턱에 도달하고 나면 그 이후 모든 유형의 수입 증가는 삶에 대한 우리의 만족도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죽기 전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20대의 자동차와 5대의 집"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족들의 사랑과, 자식들과의 추억과 반려견과의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새로운 경제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A. Money (돈)

 - 우리는 돈을 만들고 유통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현재 화폐는 대출이나 부채로 창출되고 있다. 은행으로부터의 대출을 통제하는게 한 가지 중요한 방식이다. 매리 멜러는 'Positive money' or 'public money'를 통해 국가가 화폐의 공급을 통제하고 어떻게 그것을 사회적, 환경적으로 유용한 프로젝트로 유입시키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돈이 부채로 사회에 분배되면, 부채 기반의 성장 경제 속에서 화폐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부채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은 성장률이 이자율을 초과하는 방법밖에 없다.

 

B. Work (일)

  - 이러한 수축 시나리오 속에서 실업률이 올라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노동 시간을 감축하는 것이다. 필요 노동이 공평하게 공유되어 최소한 모두가 임금을 통해 생계의 주요 수단인 일자리에 공평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노동 시간을 감축하면 모두가 의미 있는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시간당 임금을 올려야 한다. 더 적게 일하면서도 넉넉한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말이다. 혹은 기본 소득이나 가계 소득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C. Consumption (소비)

  - 탈성장의 다른 주장은 광고를 제한하는 것이다. 제품의 의도적인 진부화를 제한하는 것이다. 제품의 보증기간을 늘려서 의무적으로 장기 수명을 갖게 하는 방법도 있다. 여기서 Right to Repair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수리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여 새 제품을 사는 대신에 쉽게 고쳐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탁기를 20-30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든가, 아이폰의 경우에는 모듈 방식이나 수리가 가능한 방식으로 만들어 추가되는 물질적인 part 없이 업데이트만으로 20-3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IV. Ecological Debt (생태적 부채)

  - 북반구의 산업 국가가 남반구에 대해 자원 강탈과 폐기물 처분을 위한 환경적 공간 이용으로 축적한 부채

 

탈성장이라는 질문에서 중요한 부분은 부유한 국가와 빈곤 국가 사이에 구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탈성장 옹호자들은 빈곤국이나 남반구(the Global South)에 탈성장을 요구하지 않는다. 일부 국가에서는 GDP의 총량 증가가 보건과 교육 등의 투자에 필요한 자원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물론 일부는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부유한 국가에서는 탈성장이 일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극도로 높은 수준의 GDP와 과도한 소비가 세계 곳곳에서 생태적 붕괴를 일으키는 주된 요인이기 때문이다. 

 

탈성장은 생태 부채를 인정하고 부채를 지불하는 것을 함축한다. 생태 부채는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세계 자원의 거대한 재분배를 의미한다. 부자에서 가난한 사람으로, 그리고 평범한 사람으로 부를 재분배 한다는 것은 어떤 추가적인 총량적 성장 없이도 사람들의 삶과 존재적 필요조건의 향상을 보장할 수 있다. 하루에 7~8달러면 극빈층의 가난을 일소할 수 있다. 즉, 모두가 보건과 교육, 충분한 영양, 주거에 대한 접근을 보장받을 수 있다. 전 세계의 10%의 부자들의 7%의 수입만 빈곤층에게 전환해도, 지구적 빈곤을 단번에 끝낼 수 있다(end in a single stroke forever). 이는 세계 경제를 성장시키면서 일부의 낙수효과가 빈민들에게 미칠 것을 기대하는 기존의 지배적인 발전 접근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우리의 목적이 인간의 안녕(well-being)과 같은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면 어떠한 추가적인 경제 성장 없이도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다.

 

 

V. System Change (체제 변화)

 

현 제도상의 가장 큰 도전은 제도적 시스템이 구조화되어 있는 방식에서 권력의 대부분이 돈을 가진 이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러한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 중 일부는 더 낮은 곳으로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후변화에 당장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탈성장은 받아들이기 힘든 대안일 수 있다. 당신이 현실주의자거나 과학자들을 믿는다면, 지금 대안으로 제공되는 기술적 해법은 현재의 시스템 안에서 가능하지 않다고 얘기하고 있다. 기후 위기는 우선순위의 문제다. 깨끗한 물, 살만한 미래와 지구에 대한 권리보다 경제 성장을 먼저 한다면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변화든 문화적 변화와 정치적 변화를 포함할 것이라 한다. 다른 정치를 기꺼이 지지할 사람들과 이런 정치가 가져올 변화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핵심은 경제 성장이 아니라 상이한 가치(different values)라고 말한다. 백인과 유색인종, 무슬림과 비무슬림,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원주민과 비원주민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Youth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라고 말이다. 결국 인류는 하나이고, 더 늦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떠오른 생각을 적은 글이다.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 링크를 남긴다.

(참고: stellamoment.tistory.com/21?category=764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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